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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플러스에는 KBS를 빛낸 인물로 국민 MC, 유재석이 소개된 가운데, 빈곤했던 10년간의 무명시절을 겪고, 지금의 대세 스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성공스토리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KBS 2TV '연중 플러스'

지난 3월 16일 방송한 KBS 2TV '연중 플러스'는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는 ‘연중 하이라이트’를 담았는데, 연예가 헤드라인의 'KBS를 빛낸 50인 2부'에서 유재석의 영상이 전파를 탔습니다.

현재 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은 1991년 제1회 KBS 대학 개그제로 데뷔했는데,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최연소 KBS 공채 7기로 합격해 당시 최연소 개그맨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후 10년이라는 긴 무명 시절을 겪었으며, 작은 단역도 버거워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지어 코너 시작부터 끝까지 박수만 치고 돌아간 적도 많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건방진 이미지 때문에 선배들에게 찍혀

유재석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웃기는 아이였는데, 학교 반에서는 항상 오락부장을 도맡았으며, 고등학생 때는 방송에 출연도 했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웃기는 능력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했고, 그 능력으로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KBS '대학개그제'에 출전했습니다.

KBS 2TV '해피투게더'

대회에서 자신만만했던 유재석은 자신이 이 대회에서 대상을 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의 말에 의하면 이 당시부터 자신은 건방지고 오만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건방지고 오만했던 유재석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상이 아닌 장려상을 받았는데, 장려상으로 이름이 불리어졌을 때 유재석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심지어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은 귀를 파면서 무대로 내려갔습니다.

이 행동은 '내가 왜 장려상이야? 내가 잘못 들었나?' 하면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그 모습이 그대로 방송으로 나가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유재석이 장려상을 받고 처음 방송국에 갔을 때, 선배들이 "네가 상 받으면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귀를 후볐던 유재석이냐? 건방지다"라는 말을 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습니다. 이에 그는 '건방진 이미지'로 남아 선배들의 챙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많은 선배들이 유재석을 좋아하지 않았고 코미디언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유재석이 맡는 배역은 잠깐 나왔다 사라지거나 대사도 없는 역할이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리포터 자리에서는 멘트를 반복해서 실수하고 외우지 못해서 결국 잘리기도 했으며, 이때 유재석은 자신이 카메라 울렁증과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카메라 울렁증, 무대 공포증으로 엉망이 된 개그맨

당시 유재석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동물이나 곤충의 탈을 쓰고 나와서 지나가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는데, 그는 훗날 이 탈을 쓰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전하기도 했으며, 당시 출연료가 6만 4,000원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유재석의 데뷔 초 생활은 건방진 행동과 오만, 실수, 카메라 울렁증과 무대 공포증으로 엉망진창이 된 유재석과 반대로 그의 동기들과 후배들은 방송에서 끼를 보이며 승승장구했고, 유재석의 무명 생활은 점점 길어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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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방송 관계자들도 그를 좋지 않게 평가했는데, 시간이 흐른 뒤 유재석은 한 예능을 통해 "PD로부터 'C급'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속으로 'D급'이라고 생각했는데 높게 평가해 줘서 속으로 웃었다"라고 자신을 희화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절망 속에 있던 유재석은 점점 소심해졌으며 2000년에 접어들면서 코미디언을 포기할까 수없이 고민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특히 유재석은 과거 SBS '런닝맨'에서 무명시절 설움을 고백한 바 있는데, 당시 그는 "지난 1991년 여름, 동료 개그맨들과 식당에 갔다. 돈이 없어서 부대찌개를 인원수대로 못 시키고 좀 적게 시켜서 라면을 많이 넣어 먹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개그맨 형들이랑 갔는데 내가 돈이 없을 때라 나눠내기로 한 돈마저도 없어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나한테 '너네들 돈 좀 갖고 다녀. 거지냐?'라고 하더라. 서러운 마음에 울었다"라고 말해 무명시절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습니다.

 

지금의 유재석을 만들어준 기도

당시 일이 없었던 유재석은 6개월간 방송국에 출근하지 않고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었으며, 코미디언의 꿈을 접지 못하고 과거 건방지고,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매일 밤 간절히 기도하고 다짐했다고 했습니다.

MBC '무한도전'

실제로 과거 MBC '무한도전' 팬미팅에서 그는 "무명시절이 길어 스스로 너무 답답했다"며 "제가 예전부터 참 많이 기도했다. 자기 전에, 방송이 너무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어긋나고 그랬을 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말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단 한 번만 개그맨으로서 기회를 주시면 소원이 나중에 이뤄졌을 때 지금 마음과 달라지고, 초심을 잃고, 만약에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얻은 것이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누구보다 큰 아픔을 주셔도 단 한마디도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나요'라고 말하지 않겠다"라고 기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때 당시 유재석은 "딱 3년만 더 노력해보고 안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라는 심정으로 버텼다고 했습니다.

 

인기 톱스타의 입김으로 '유재석 시대' 열려

이후 유재석은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상에 대한 불만, 시기와 질투, 자신의 한계에 빠져있던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고, 심지어 죽기보다 싫었던 곤충탈을 스스로 쓰고 '자유선언 토요일 60년을 이어라'을 진행하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MBC '놀면 뭐 하니?'

그리고 '메뚜기'라는 별명을 처음 얻은 유재석에게 큰 기회가 찾아왔는데, 2000년 ‘스타 서바이벌 동고동락’의 메인 MC로 발탁된 것이었습니다.

배우 최진실의 강력한 응원과 추천으로 메인 MC가 됐다고 알려졌는데, 당시 최고 인기스타였던 고 최진실이 PD들에게 "메뚜기 탈을 쓴 사람이 재미있다. 한 번 써보라"라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해당 프로그램으로 유재석은 2000년 MBC 연예대상 MC 부문 특별상을 수상했고, 이때부터 유재석의 시대가 열렸고,이때부터 유재석에게 국민 MC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무한도전의 서막

유재석은 2005년 운명의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예능계의 한 획은 그은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이었습니다.

당시 '무모한 도전'은 처참한 시청률로 인해 종영 위기까지 몰렸으나 PD는 물론, '무한도전'으로 간판까지 바꾸면서 금세 자리를 잡더니 MBC와 유재석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우뚝 섰습니다.

MBC '무한도전'

2005년 KBS에서 '해피투게더 프렌즈', 이후 2006년~2010년에는 '무한도전'과 '공감토크쇼 놀러 와'로 MBC를 평정했으며, 2008년~2009년도에는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 2011년~2012년도에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으로 SBS 연예대상까지 거머쥐면서 방송 3사 연예대상을 모두 수상하면서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게다가 2013년에는 예능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도 수상했으며, 유재석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2년 연속'으로 대상 트로피를 가져갔습니다.

MBC '방송연예대상'

한편 유재석은 1972년생으로 올해 나이 52세이며, 1991년 KBS 공채 개그맨 7기로 데뷔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방송 3사 연예대상과 백상예술대상을 총 19회 수상한 '역대 최다 대상 수상자'로 현재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재석은 종횡무진하는 파급력으로 각종 예능, 광고등에 활약하고 있으며, 이런 그의 무명시절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정말 간절했나 보네요", "건방진 유재석 상상이 안간다", "무대공포증마저 극복한 노력"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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