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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1세대로 불리던 가수 현진영이 최근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져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현진영, 인격장애 앓고 있어

사진 KBS2

가수 현진영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14세에 인격이 멈췄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지난 25일 방송된 KBS 2TV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서 현진영은 이사 온 지 3개월임에도 여전히 정리가 끝나지 않은 방에서 음악작업을 하면서 군것질을 하는 아이 같이 철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내 오서운이 대신 정리해 주겠다고 해도 현진영은 "잔소리 좀 하지 마"라면서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에 싫은 내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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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아내 오서운이 대신 정리를 해주겠다며 청소에 나섰지만 현진영은 화를 내며 하나도 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특히 낡은 노트를 버리려고 하자 현진영은 "이걸 왜 버리냐, 이 노트 기억 안 나냐"라고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어 "이건 네가 나 정신 병원 보냈을 때 적었던 것"이라며 슬럼프로 힘들었던 과거를 언급했습니다.

당시 현진영은 '어릴 때 사고를 쳐서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데 정신병원 꼬리표까지 달고는 못 산다'면서 거부했지만 '그럼 더 이상 못 만나겠다'는 오서운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입원 치료를 받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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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영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14세에 정신 연령이 멈춘 인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현재 오서운은 집을 나서기 전 행동 지침서를 큰소리로 낭독하게 하는 등 그의 훈련사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진영은 운전 중 끼어드는 차량을 향해 욕을 하고 20대 후반 젊은이들을 학생으로 오해해 흡연하지 말라고 간섭하는가 하면 함께 무대에 서는 후배들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때마다 오서운은 현진영을 제지했고 현진영도 감정을 누그러뜨렸습니다.

인터뷰에서 오서운은 "남편이 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 욕을 먹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현진영은 아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누리꾼들은 "얼마나 충격이 크면..","안타깝네요. 잘 이겨 내시길","아내가 진짜 대단하다"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현진영,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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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영은 과거 방송에서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방송된 '새롭게 하소서 CBS'에는 현진영이 출연해 인생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영상에서 MC 주영훈은 현진영에게 "어린 시절 부유한 가정 속에서 자랐다고 들었다"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현진영은 "재벌 수준이었다. 재력가였던 조부모님의 재산을 아버지가 물려받았었다.아버지가 우리나라 최초로 '트리플 에이'라는 미 8군 빅밴드를 만든 1세대 재즈피아니스트였다.

당시 재즈 뮤지션들은 공연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비를 들여서 밴드들에게 월급을 줬었다. 돈을 쓰시면서 음악을 하셨던 분이다"며 "당시 집도 부의 상징인 유엔빌리지에서 살았다. 집에 수영장도 있었고 일하시는 분들 별채도 따로 뒀었다. 저는 명문 리라초등학교에 다녔었다"라고 과거를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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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인생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8년간 위암 투병을 하셨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어머니 병시중으로 전 재산을 다 쓰셔서 반포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며 "어머니 키가 170cm가 넘었었다. 사진으로 보면 모델 같은데 제 기억 속에는 야윈 모습 밖에 없다. 좋은 기억이 없고 아픈 모습 밖에 없다"라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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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이 기억나냐"는 질문에 현진영은 "학교에 있을 때 동생에게 어머니의 비보를 처음 들었다. 곧바로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갔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더라. 깨우고 옆에 눕고 그랬는데도 안 일어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첫눈이 내려서 첫눈 트라우마가 있다. 밖에도 안 나간다"라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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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영은 "어머니가 떠난 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신문과 우유 배달, 중국집에서 접시 닦기 등을 하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며 "그러다 우연히 대학로에서 흑인들에게 배운 춤을 추게 됐고 댄스팀 단장 눈에 들어오게 됐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공연을 시작했고 돈을 벌었지만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해 그는 좌절하고 말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에 낙심했던 현진영은 극단선택까지 결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다리를 건너다 뛰어내렸다. 물속에 들어갔는데 발에 뭐가 닿는 게 느껴지더라. 그 순간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물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내 선택이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잘하면서 왜 한강에서 죽으려고 했나 바보 같다고 느꼈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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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진영은 1992년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히트 친 대한민국 1세대 힙합 아티스트입니다. 데뷔 전에는 이태원동 나이트클럽 문나이트 등지에서 활동하던 한국비보이 1세대로 당시 이태원에서 활동하던 댄서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주노, 박남정, 박철우, 도건우, 현진영이 이태원의 터줏대감 격이었습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함께 아이돌 위주의 댄스음악을 개척한 첫 선구자들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진영이 무대 의상으로 즐겨 입었던 X마크가 새겨진 후드티와 큼직한 힙합스타일의 청바지는 당시 청소년 및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힙합 패션이라는 장르를 유행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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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최근에는 현진영이 30년 전 무대의상을 재해석한 패션 브랜드를 론칭한 소식이 전해져 시선을 끌었습니다. 현진영은 "X세대와 MZ세대가 패션으로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5일 공식 론칭한 현진영의 브랜드 'X KARA'(엑스 까라) 1992년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서 현진영이 직접 무대 의상으로 입었던 후드 티셔츠를 오마쥬 한 상품을 내놨습니다. 

현진영은 "팬클럽 모임에 나온 한 30대 골수팬이 MZ세대인데도 내 옷을 멋지게 재해석해 제작해 입은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또 다른 20대 팬 역시 디자이너인데 2023년판 현진영 패션을 좋아해서 함께 의기투합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는데도 X세대였던 나와 MZ세대들이 패션으로 자유롭게 교감할 수 있어 정말 뿌듯하고 즐거운 작업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현진영은 "레트로가 최신 트렌드가 된 MZ세대와 음악과 패션이라는 매개체로 세대를 뛰어넘은 감성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론칭 첫날 반팔 티셔츠는 오픈한 지 2시간 만에 초판 물량 500장이 완판 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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